반지.

원형을 유지하는 선물은 ‘영원’을 상징하는 거라, 함부로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다. 그래서였나? 몇 번의 연애에서 한번도 쉽사리 커플링을 해보지 못 했다.

평생을 거추장스러운 장식물 없이 자유롭게 살아온 내 왼손 약지에 은색 반지가 끼워졌다. 내가 원해서 낀 반지이다.

많이 어색하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든,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낼 때든, 서류를 볼 때든, 손까락이 움직일 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듯이 딱딱한 느낌을 내게 건넨다.


어색하지만, 재미있다.

왜 연인들이 반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에 대한 애정, 믿음, 책임 등의 의미를 지우는지 알 것 같다. 아주 신기한 경험이다.

내게 끼워진 반지는 그 어색한 감촉을 느끼게 할 때마다,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
“이제 당신은 길에서 미니스커트에 가슴 파인 옷을 입은 여자가 지나간다고 멍하니 바라보면 안 되요”
“이제 당신은 주변 여자들에게 함부로 과도한 친절을 베풀어서는 안 되요”
“이제 당신은 마냥 친구들이 좋다고, 술 많이 마시고 늦게 집에 들어가서는 안 되요”

물론, 안 된다는 말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항상 누군가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고, 건강 챙겨요”
“바빠도 틈내서 그녀에게 연락주세요. 그녀도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당신은 누군가에게는 제일 멋진 사람이잖아요”


사실, 반지가 무슨 말을 하겠냐? 모든 것은 다 사람이 의미를 붙이기 나름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시인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꽃은 ‘꽃’이라 불리는 순간 ‘꽃’이 된다고.
반지도 내가 이렇게 의미를 붙이고, 내 행동을 정돈하거나, 내 기분을 좋게 하는데 계기로 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유쾌한 것을… ㅎㅎㅎ
남들은 속박의 상징이다. 자유를 잃은 것이다 말하지만, 뭐 어떤가.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아주 유쾌한 경험이다. 어색하고, 이상하지만, 내가 그렇게 의미를 붙이기 시작한 이상, 아주 즐겁게 끼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ㅎㅎㅎ


어제 프로젝트 쫑파티로 삼성동에 있는 YH Wine Gallery라는 곳에 갔다.

약 10명의 사람들이 함께한 자리여서 와인 한 병을 따면, 한 사람당 몇 모금만 마실 수 있는 정도로 와인이 분배되었다. 그래서 한 자리에서 7병의 서로 다른 와인을 맛 볼 수 있었다.

난 와인을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그나마 와인에 대한 상식을 얻게 된 것은 만화 ‘신의 물방울’을 몇 권 보고 나서다. 그리고, 와인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언젠가 스테이크를 구워 먹을 때 적포도주를 곁들여 먹었더니, 와인은 물론 스테이크의 맛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나서이다. 흔히들 말하는 마리아주를 느낀 것이다.

그 뒤 해외 출장을 가거나, 기회가 되면 어떤 것이 좋은 와인인지는 모르지만, 한 병씩 사서 가끔 집에서 이것저것과 같이 먹어봤다. 하지만 그 때의 감흥을 다시 찾기란 힘들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와인도 잘 모르면서 산 와인이 아무 생각 없이 준비한 요리와 맞아 떨어지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다. 와인을 잘 아시는 분과 함께한 자리여서 처음 마시는 와인부터 마지막 7번째 와인까지 조금씩 향과 맛을 달리하면서, 그래도 같이 먹는 음식들을 배려한 나름의 마리아주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ㅎㅎㅎ 와인을 몰라도 코가 즐겁고,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웠으니 무조건 행복했던 시간이라 말하겠다.


정말 신기한 것은 만화책에서 읽으면서 콧웃음쳤던 대사들이 내 입에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붉은 과실향이 난다, 부드러운 바닐라향이 감돈다, 아직은 어리게 느껴진다, 경쾌한 맛이 난다 등등 과거 미스터 초밥왕에서 초밥을 먹고 사람들이 바다내음이 난다는 식의 표현에서 피식 웃었던 것이 만화적 과장만은 아니었음을 이제는 알아가는 것이다. ㅋㅋㅋ (단, 아직 농염한 여인이나 아리따운 아가씨 등의 표현을 와인을 마시며 쓸 정도는 아니다.)


정말 와인마다 향과 맛이 다르고, 이들의 지속 시간과 깊이가 다른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다행스럽게도 한 자리에서 조금씩이라도 여러 와인을 맛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얻은 경험일 것이다.


와인을 맛보고, 모르는 것에 대한 경험을 하면서 새삼 느낀 것은 세상과 사물에 호감을 갖고, 언제 찾아올지 모를 경험을 준비해야겠다는 것이다.

와인 같은 것은 아는 사람들이나 마시는 것이고, 겉멋든 사람들이나 음미하는 것 아냐? 나랑은 어울리지 않아라고 이미 마음을 닫아 놓았더라면, 새롭고 훌륭한 경험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일거니까 말이다.




 


뭔가를 시작할 때 마음의 자세가 사실 굉장히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이미 인생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호감을 갖고 그 사람을 보면 친해질 기회는 더욱 많다. 어차피 인연이 아닐 사람이라 생각하고 곁눈으로 보듯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의 좋은 점, 나와 잘 맞는 면, 다른 사람에게 찾기 힘든 특징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말이다.

프로젝트도 그럴 거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예요라며 안 하겠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프로젝트와 인연은 끝이난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줄지 모르는 프로젝트인데, 그렇게 닫힌 자세로는 성장의 기회를 놓치는 상황까지 만들 수 있다.



내게는 와인이 그렇고, 서양화가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프로젝트가 그렇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내가 모르는 영역을 낯설어 하지 않으며 계속 알아가기 위해 나의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싶다.

잘 모르면 물어서 배우고 알아가면 될 것 아닌가? 그냥 그렇게 알게 되는 것을 즐기자. ㅋㅋ



요즘 내 삶의 모습을 보면, 지속 가능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개구리가 높이 뛰기 위해 몸을 낮추듯이
다음에 맛볼 초밥을 음미하기 위해 엽차로 입을 행구듯이
어린아이가 물 속 깊이 잠수를 하기 위해 숨을 한껏 들이키듯이

내 삶의 한 시간을, 하루를, 한 달을 더욱 에너지 넘치고, 효과적이고,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 적당한 휴식이 필요함을 느낀다.

예전에 내게 시간적, 심리적, 육체적 여유가 있었을 때는 그렇게 못 느꼈었다.

이제는 안다.
오후 업무 시간을 집중력 있게 보내기 위해서, 점심 시간에 적당히 쉬어야 한다.
내일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하게 위해서, 충분하고 깊은 잠을 자야 한다.
다음 프로젝트에 끝없는 열정을 보이기 위해서, 휴가를 통해 업무에 대한 고민을 잊어야 한다.


사회에 나와서 주어진 일이 잘 될 때는 몰랐다.
내가 가진 여유 시간, 즉 퇴근 이후 시간과 주말을 활용하면 밀렸던 일도 처리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다 보니, 계속 일이 늘어나고, 결국 여유 시간 자체가 사라져간다.

요즘 생활에서 배우고 있다.
이런 방식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바쁘고, 여유가 없으니까,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잃는다기 보다,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버리고, 전문 지식을 쌓는다고도 생각했다.
가족의 대소사 챙기기를 버리고, 일터에서의 명성을 쌓는다고도 생각했다.
개인의 휴식을 버리고, 자기 만족을 위해 해야 할 것의 완성도를 높인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모든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양상이 되면서 모든 것이 변해간다.




 

좀 더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고민을 하다 보면, 샐러리맨으로 사는 것은 답이 아닌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정답에 가까운 답이란 것은 무엇일까?

인생의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난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계속 치열하게 고민할 문제인 것 같다.

컨설턴트가 하는 일은 문제를 분석해서 답을 내고,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그렇게 세운 계획은 클라이언트가 실행을 함으로써 성과를 내게 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컨설턴트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나는 실행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다.

거꾸로, 최근 내게 실행력이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되었다.




흔한 예로, 최근 내게 닥쳐온 심리적, 육체적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방안이나 계획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제일 선결해야 할 것이 운동을 하는 것이다.

운동을 통해 육체적 활력을 되찾고, 그 과정에서 심리적 여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편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간단한 계획도 실행에 옮기지 못 하고 있다. ㅠ,.ㅠ



어쩌면, 잠시 일을 제쳐두고 여행을 떠나 심기일전 해보자는 답을 낼 수도 있지만,

그 것 역시 쉽게 실행할 수 있다고 자신 못 한다.




최근에는 일에 쫓겨 여유가 없다 보니까, 다른 것을 추진하고자 하는 동력이 많이 사라진 것을 느낀다.

그저 시간이 주어지면, 침대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거나, 소파에 기대어 TV를 보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어떤 악순환에 빠진 것인데, 이 악순환의 고리를 쉽게 끊어내지 못 하고 있다.

이럴 때 보면, 나란 사람의 의지가 참 약함을 느낀다.







지금 하고 있는 하나의 프로젝트 종료와 다른 하나의 중간 보고를 치르고 나면, 좀 달라지겠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렇게 또 다음으로 결단이나 실행을 미루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얼마전에 잠시 얼굴을 본 지인은 몇 년간 꾸준히 퇴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있고, 꾸준히 토요일마다 영어 회화를 한다고 했다. 그 실행력이 부러웠다.




ㅎㅎㅎ


자기개발서 같은데 보면, 생각이 났을 때 행동하고, 운동이나 정말 중요한 일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여 진행하라는 말도 있던데...

하루에 1시간내어 일하지 않는다고 업무가 마비되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말만 많고,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는 않고, 실행을 못 하는 요즘의 내가 개탄스럽다. ^^





허영만 선생님의 ‘꼴’ 1권을 후배 선물로 받아서 보고 있다. 아직 다 본 것은 아니지만, 관상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는데, 몇 가지 기본적인 것을 알아가면서 재미 정도는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관상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질 것 같지는 않다. 내 가치관 때문인지, 관상을 깊게 알고 사람을 볼 때 알고 있는 상법에 맞춰서 사람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서이다.

‘꼴’ 1권을 2/3까지만 읽어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은 상법 역시 조화를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코가 얼굴에 있는 다섯 봉오리 중에서 제일 중요하여, 코에 덕이 많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코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턱에 재복이 있다고 하면서도, 턱 역시 혼자 잘 생겼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란다. 어떻게 보면, 점쟁이들이 항상 빠져나갈 구멍을 말하고 점을 치는 것처럼, 상법도 어떤 근거를 가지고 단정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전체를 보고 전체의 점수를 더하고, 빼서 합계가 높으면 상이 좋은 것이고, 합계가 낮으면 상이 안 좋은 것이란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아 광대뼈가 적당히 있어야 하는구나, 코가 너무 높으면 자기 잘난 성격이겠구나 하며 책을 읽어도 더 많은 상법을 알지 못하면 최종적인 답은 낼 수 없다. 그냥 인생의 결과가 나오면, 눈 때문에 저렇게 되었구먼 하는 식의 해몽만 가능할 것 같다.

책은 ‘조화’란 단어가 참 어려우면서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게 했다. 나 역시 언제부터인가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Balance를 잘 갖춘 사람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균형은 어디에나 붙을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 균형을 갖기 원했는지가 나와야 한다.

난 균형 잡힌 가치관을 갖고 싶었다. 이공계의 순수함과 기술에 대한 이해, 경상계열의 사업적 마인드와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얻고 싶었다. 단순함을 통해 남자들과 소통하고, 섬세함을 통해 여자들과 소통할 수 있길 바랬다. 사회의 기득권과 어울릴 줄 알며, 반대측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했다.

넓은 가슴을 갖고, 큰 귀를 갖고, 유연한 생각을 가져 다양한 사람들이 말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방향에서 내 안에 녹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수십 년간 다듬어온 내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개선되길 희망했다.




무엇이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렵다. 바꿔 말해 균형을 찾는 다는 것은 어렵다.

미래를 위해서 현 순간을 참으며 사는 것과 지금 즐겁게 사는 것 사이의 갈등
직장에서 인정 받고 싶어서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과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유대를 위해 보내는 시간 사이의 균형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심과 성공과는 무관한 행복에 대한 욕심 사이의 고민


30대 초반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가족/연애/친구/직장/사회는 다양한 이슈를 던지며,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기도 하고, 더 많은 갈등이나 고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때로는 욕심을 버리고, 기대를 낮추라고 한다. 아니면, 욕심을 채우고 기대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이나 누리고 싶은 다른 것을 더 버리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내가 가진 유한한 자원인 시간과 돈, 열정을 어디에 어떻게 쓰겠냐고 묻는다.

꼴에서의 조화는 내가 노력해서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노력해도 피부가 조금이라도 하얗게 되지도 않았는데, 수술을 제외한다면 내 눈이 더 커지거나, 코가 더 후덕해지지는 변화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가치관이나 내가 조정 가능한 자원의 배분에서는 조화를 추구하고, 균형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 난 조화로운 삶이 무엇인지와, 추구하고자 하는 미래의 꿈에는 어떤 것들이 섞여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를 더욱 많이 생각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조화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무조건 답은 아니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투입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가지에 집중하는, 달리 말하면 치우쳐진 삶의 필요성도 이야기 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선택과 집중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고 표현인데, 사람이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고 하는 사람이 된다’일 것이다. 사실, 어른이라는 것은 자기가 해야 할 것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내가 한 생각, 행동,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식이었다. 할 일을 안 한 것에 대해서는 가볍게 혼나거나, 어려서 저렇다는 식의 핀잔을 들으면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천천히 알게 모르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서 해야 할 것을 하는 식으로 행동이 바뀌어간다. 그토록 나가서 놀고 싶던 어린 시절, 대입에 가까워 올수록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묵묵히 공부를 하면서, 우리들은 당장 하고 싶은 것을 뒤로 미루어두는 인내를 배운다. 하지만, 나는 어떨까?

어린 시절부터 부쩍 사람들에게 조숙하고,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었지만, 정작 나는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고 보면, 그 동안 난 참으면서 산 시간이 길지 않다. 공부가 되었던, 군생활이 되었던, 동아리가 되었던 대부분 내가 즐거워서 했던 일들이고, 행동들이었기 때문에, 하기 싫은 것을 참으면서 해 본 적이 없다. 어떻게 보면 실패나 어려움이 없었던 무탈한 삶이 지속된 행운아인 것이다.

이제 사회에 나와 업무라는 이름의 피하면 안 되는 대상을 만나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며 나 자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즐겁고 행복할 줄 안다는 가치관으로 일관할 수 없는 경우를 마주하게 된다. 내가 한, 또는 내가 하지 않은 행동들이 나를 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과중하거나 어려운 업무를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때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또 지금 문득 느끼는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도 싶다. 하고 싶은 행동들을 하는 것이 몸과 마음에 좋다는 것은 알지만, 매번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겪는 모든 상황들은 모두 내가 만든 것들이다. 업무가 많다면, 내 일 욕심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고, 지난 연휴기간 동안 마음이 허했다면, 그건 내 오만함과 부족함이 소중한 사람을 멀리가게 한 것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현재 내가 마주한 현실에서 쉽게 도망가지 못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내가 만든 상황이고, 그래서 내가 책임져야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탓할 수 없고, 어려움을 피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꼭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할 것들이 마구 생기는 기분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사람은 어려운 것에서 쉬운 것으로 움직여 간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누구나 제약이 없는 자연스러움을 선호한다. 늦잠 자는 것이 편하고, TV를 하루 종일 보는 것이 좋다. 만화를 무작정 읽는 것도 좋고, 게임을 하는 것도 좋다. 일과 공부를 하지 않고, 매일 즐겁게 친구들과 놀 수 있다면 좋겠다. 사람이 나태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밤에 을지로입구역에서 집에 갈 때 보이는 홈리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을 보면,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일을 하지 않고 서울역에서 주는 배식을 먹고 땅을 침대 삼아, 하늘을 이불 삼아 살아 가는 편안함을 알게 되면, 다시는 일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편안함을 쫓는 것은 비가역(非可逆)반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시 편안함에서 불편함으로 넘어오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불편함에서 편안함으로 내 성향이 바뀌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한번 맛 들리면 끊기 어렵다는 중독물질인양 편안함을 경원 시 했다. 어쩌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민감한 대응이었는지 모른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의 경우 근태 관리를 엄하게 하지 않는다. 전날 늦게 집에 가면 오전 10시에도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내 딴에는 항상 8시 반에 출근해야겠다 마음 먹었었다. 편안함에 익숙해지고, 내 스스로 나태해지는 것이 싫어서였다. 하지만, 2년째 생활에서 점점 내 안에 나태함이 독버섯처럼 자라나 9시 반에 출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태해지는 것만이 아니다. 어쩌면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의탁하는 것도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기 위한 이유를 내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쉽고,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하는 손 쉬운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내 자신에게서 삶의 이유를 찾으려니, 은근 힘들기도 하다.




 

생각을 토해내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알게 되고, 자신의 논리가 만들어진다.


난 생각을 모두 정리한 상태에서 말을 꺼내는 타입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 없이 말을 시작하여 낭패를 겪는 편도 아닌 것 같다. 평소에 해둔 생각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고 말을 하면서, 어슴푸레 했던 생각들이 또렷해지는 편인 것 같다. 난 생각을 토해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스로를 알게 되는 것은 물론, 내게 필요한 논리를 만드는 것이다.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도 그렇다. 생각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멤버와 이야기를 나눈다. 멤버의 긍정 또는 부정적 대응에 맞추어 나 또한 이야기를 전개해가다 보면, 보다 공고한 틀이 갖추어지게 된다. 때로는 혼자 말하고, 혼자 ‘아! 맞다’라며 답을 할 때도 있다. 나 혼자 말하다가 혼자 깨달음을 얻어 결론을 내는 것이다. 이런 방식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짧은 추석 연휴였지만, 최근 정신 없는 업무와 개인적 삶에서 살짝 떨어져서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너무 놀고, 너무 멍 때리고 있다가 3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해야 할 것을 못 해놓고, 월요일을 맞는 다는 것이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결국 블로그에 포스팅까지 했으니, 나름 완벽한 연휴였다고 평가하자.

그 동안 내 생각을 블로그에 토해내기 너무 어려웠다. 또는 이야기를 했다가도 나만이 볼 수 있는 구석 깊은 곳으로 치워버리곤 했다. 이런 행동들도 일종의 도망이다. 꼭 결말이 이제는 도망가지 않겠다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그냥 그랬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 지인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말을 하는 것은 사실 나름의 스스로에 대한 컨트롤 방법이기 때문에 주저려봤다. 오랜만에 말문이 트였나 보다.

나는 일기는 아니지만, 매일 무엇을 했는지 기록해두는 것을 좋아한다.

일과표 또는 스케줄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일이 있기 전에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있은 후에 적는 일종의 log이다.

꽤나 오래전부터 이런 일종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음... 군대 있을 때부터였나?

군대 있을 때부터 매일 같이 무엇을 했는지 기록한 것은 아니다.

몇 달씩 바뻐서, 또는 게을러져서 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기록을 하지 않은 기간도 많이 있다.




오늘도 이번 주 한주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일과표를 채우고 있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과거를 더듬어 몇 일전에 무엇을 먹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바로 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상은 기억되기 어렵다는...

하루하루 매일매일 반복되는 업무, 또는 식사 같은 생활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변화들을 기억할 정도로 소중히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생애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부분들이 기억에 남지 않는 순간들로 채워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매 순간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멋지게 산다는 것은 욕심이다.

물론 매 순간이 찬란하다면, 사실 그 어떤 순간도 돋보이고 특별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것 역시 좋지는 않다.






그냥.

직장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예전보다는 더 조급한 마음에 살아가게 되면서,
어쩌면 기억에 남길 만한 순간들 마저 신경도 쓰지 못하고, 다른 언제나와 같은 무의미한 순간들로 만들어 써버리는 것은 아닌지...

시간을, 내 삶을 더 추억할 만한 것들로 만들 수는 없을지하는 생각이 들어서 끄적여본다.






매 순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1년을 단위로, 분기를 단위로, 한달을 단위로 뒤를 돌아 볼 때, 그 때는 이런 일이 있었지하고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내 삶을 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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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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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경로



드디어 나도 미국에 와보는 구나.

다들 그렇게 미국, 미쿡... 그러던 것을 옆에서 보면서,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미국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렇게나 미국, 미쿡거리나 말이다.




사실, 고등학교 때 일본에 가봐서 그런지, 외국에 가는 것에 대한 환상은 없다.

외국이 이국적이고 새로운 경험과 풍경을 제공하고 그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란 것은 알지만,



그냥, 뭐라고 할까...

한국에서 처음 가본 곳이나, 해외의 어딘가에 간 것이나, 장소만 바뀌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저 해외에 대한 환상은 없는 편이다.

^^





언젠가 미국, 미쿡에 대한 환상과 가고자 하는 이유가 생긴다면 꼭 가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유럽의 경우 꼭 가보고 싶은 이유가 있어서 계획을 가지고 돈을 모아서 가봤었다. ^^)




그런데, 업무 출장으로 미국에 드더어 와봤다. (7월 13일부터 19일까지 5박7일)

아직, 미국만의 뭔가 새로운 점을 발견하지는 못 했다.

음... 호주에서 봤던 모습이나, 유럽에서 봤던 모습과 얼핏 비슷하다. ㅎㅎ





그래도 뭔가 이것저것 많이 보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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