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프로젝트 쫑파티로 삼성동에 있는 YH Wine Gallery라는 곳에 갔다.

약 10명의 사람들이 함께한 자리여서 와인 한 병을 따면, 한 사람당 몇 모금만 마실 수 있는 정도로 와인이 분배되었다. 그래서 한 자리에서 7병의 서로 다른 와인을 맛 볼 수 있었다.

난 와인을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그나마 와인에 대한 상식을 얻게 된 것은 만화 ‘신의 물방울’을 몇 권 보고 나서다. 그리고, 와인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언젠가 스테이크를 구워 먹을 때 적포도주를 곁들여 먹었더니, 와인은 물론 스테이크의 맛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나서이다. 흔히들 말하는 마리아주를 느낀 것이다.

그 뒤 해외 출장을 가거나, 기회가 되면 어떤 것이 좋은 와인인지는 모르지만, 한 병씩 사서 가끔 집에서 이것저것과 같이 먹어봤다. 하지만 그 때의 감흥을 다시 찾기란 힘들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와인도 잘 모르면서 산 와인이 아무 생각 없이 준비한 요리와 맞아 떨어지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다. 와인을 잘 아시는 분과 함께한 자리여서 처음 마시는 와인부터 마지막 7번째 와인까지 조금씩 향과 맛을 달리하면서, 그래도 같이 먹는 음식들을 배려한 나름의 마리아주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ㅎㅎㅎ 와인을 몰라도 코가 즐겁고,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웠으니 무조건 행복했던 시간이라 말하겠다.


정말 신기한 것은 만화책에서 읽으면서 콧웃음쳤던 대사들이 내 입에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붉은 과실향이 난다, 부드러운 바닐라향이 감돈다, 아직은 어리게 느껴진다, 경쾌한 맛이 난다 등등 과거 미스터 초밥왕에서 초밥을 먹고 사람들이 바다내음이 난다는 식의 표현에서 피식 웃었던 것이 만화적 과장만은 아니었음을 이제는 알아가는 것이다. ㅋㅋㅋ (단, 아직 농염한 여인이나 아리따운 아가씨 등의 표현을 와인을 마시며 쓸 정도는 아니다.)


정말 와인마다 향과 맛이 다르고, 이들의 지속 시간과 깊이가 다른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다행스럽게도 한 자리에서 조금씩이라도 여러 와인을 맛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얻은 경험일 것이다.


와인을 맛보고, 모르는 것에 대한 경험을 하면서 새삼 느낀 것은 세상과 사물에 호감을 갖고, 언제 찾아올지 모를 경험을 준비해야겠다는 것이다.

와인 같은 것은 아는 사람들이나 마시는 것이고, 겉멋든 사람들이나 음미하는 것 아냐? 나랑은 어울리지 않아라고 이미 마음을 닫아 놓았더라면, 새롭고 훌륭한 경험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일거니까 말이다.




 


뭔가를 시작할 때 마음의 자세가 사실 굉장히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이미 인생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호감을 갖고 그 사람을 보면 친해질 기회는 더욱 많다. 어차피 인연이 아닐 사람이라 생각하고 곁눈으로 보듯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의 좋은 점, 나와 잘 맞는 면, 다른 사람에게 찾기 힘든 특징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말이다.

프로젝트도 그럴 거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예요라며 안 하겠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프로젝트와 인연은 끝이난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줄지 모르는 프로젝트인데, 그렇게 닫힌 자세로는 성장의 기회를 놓치는 상황까지 만들 수 있다.



내게는 와인이 그렇고, 서양화가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프로젝트가 그렇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내가 모르는 영역을 낯설어 하지 않으며 계속 알아가기 위해 나의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싶다.

잘 모르면 물어서 배우고 알아가면 될 것 아닌가? 그냥 그렇게 알게 되는 것을 즐기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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