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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의 발명품 '등자'

xonamjoong 2006. 1. 17. 00:19

등자와 박차 - 저렇게 간단해 보이는 물건도 사실은 굉장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고대의 로마는 중무장 보병이 유명했다. 그들에게 기병은 연락병이나 앞으로 지휘자가 될 사관 후보생의 보직이었다. 중세의 기사가 전투력의 상징이었던 것과 비교해서, 고대의 시대에 기동력 뛰어나고, 위에서 아래를 공격할 수 있는 기병이 주력이 되지 못했던 것은 고대의 기병은 말 산지에서만 배출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의 창시자인 그리스인이나, 공학의 천재인 로마인이 생각해내지 못한 게 의아할 정도지만, 고대인들은 등자를 알지 못했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히포크라테스도, 고대 의학의 대성자인 갈레노스도 오랫동안 말에 올라타고 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있었기 때문에 울혈이 생긴 다리를 기사의 직업병이라고 말했다. 고대 기사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안장만 놓은 말에 걸터앉아, 등자라는 받침대도 없이 두 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였다. 축 늘어진 발로도 말 옆구리를 걷어찰 수는 있다. 따라서 등자가 없어도 말을 타고 달릴 수는 있다.

 하지만, 말을 타면서 화살을 쏘거나 창으로 찌르려면 말등에서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지 않으면 잘 되지 않는다. 등자가 필요한데, 등자가 없는 이상 두 다리로 말 옆구리를 힘껏 조여서 몸을 말 위에 고정시키는 특수한 기능이 필요했다. 이것은 어릴 적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도저히 습득할 수 없는 기술이다. 이렇게 되면, 기병이 될 수 있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말을 타고 산야를 뛰어다니는 말 산지의 출신자거나 아니면 사회적 지위가 노고 부유한 집의 자제뿐이다.

 등자는 서기 11세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보급된다. 기사가 중세의 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등자가 출현한 덕분이었다.

 나는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인생에 한번도 주목해 본적 없는 등자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가를 새삼 알았다. 등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몸무게를 실어 칼을 휘두르거나 활을 쏠 수 있었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왜 징기츠칸의 군대가 세계를 정벌할 수 있었는지, 몽고인들이 타고난 기마 민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점이었는지 이해하지 못 했었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신기하고, 재미난 이야기거리가 많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