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에서 '조화'와 삶에서의 '조화'
허영만 선생님의 ‘꼴’ 1권을 후배 선물로 받아서 보고 있다. 아직 다 본 것은 아니지만, 관상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는데, 몇 가지 기본적인 것을 알아가면서 재미 정도는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관상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질 것 같지는 않다. 내 가치관 때문인지, 관상을 깊게 알고 사람을 볼 때 알고 있는 상법에 맞춰서 사람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서이다.
‘꼴’ 1권을 2/3까지만 읽어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은 상법 역시 조화를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코가 얼굴에 있는 다섯 봉오리 중에서 제일 중요하여, 코에 덕이 많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코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턱에 재복이 있다고 하면서도, 턱 역시 혼자 잘 생겼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란다. 어떻게 보면, 점쟁이들이 항상 빠져나갈 구멍을 말하고 점을 치는 것처럼, 상법도 어떤 근거를 가지고 단정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전체를 보고 전체의 점수를 더하고, 빼서 합계가 높으면 상이 좋은 것이고, 합계가 낮으면 상이 안 좋은 것이란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아 광대뼈가 적당히 있어야 하는구나, 코가 너무 높으면 자기 잘난 성격이겠구나 하며 책을 읽어도 더 많은 상법을 알지 못하면 최종적인 답은 낼 수 없다. 그냥 인생의 결과가 나오면, 눈 때문에 저렇게 되었구먼 하는 식의 해몽만 가능할 것 같다.
책은 ‘조화’란 단어가 참 어려우면서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게 했다. 나 역시 언제부터인가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Balance를 잘 갖춘 사람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균형은 어디에나 붙을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 균형을 갖기 원했는지가 나와야 한다.
난 균형 잡힌 가치관을 갖고 싶었다. 이공계의 순수함과 기술에 대한 이해, 경상계열의 사업적 마인드와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얻고 싶었다. 단순함을 통해 남자들과 소통하고, 섬세함을 통해 여자들과 소통할 수 있길 바랬다. 사회의 기득권과 어울릴 줄 알며, 반대측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했다.
넓은 가슴을 갖고, 큰 귀를 갖고, 유연한 생각을 가져 다양한 사람들이 말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방향에서 내 안에 녹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수십 년간 다듬어온 내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개선되길 희망했다.
무엇이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렵다. 바꿔 말해 균형을 찾는 다는 것은 어렵다.
미래를 위해서 현 순간을 참으며 사는 것과 지금 즐겁게 사는 것 사이의 갈등
직장에서 인정 받고 싶어서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과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유대를 위해 보내는 시간 사이의 균형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심과 성공과는 무관한 행복에 대한 욕심 사이의 고민
30대 초반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가족/연애/친구/직장/사회는 다양한 이슈를 던지며,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기도 하고, 더 많은 갈등이나 고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때로는 욕심을 버리고, 기대를 낮추라고 한다. 아니면, 욕심을 채우고 기대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이나 누리고 싶은 다른 것을 더 버리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내가 가진 유한한 자원인 시간과 돈, 열정을 어디에 어떻게 쓰겠냐고 묻는다.
꼴에서의 조화는 내가 노력해서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노력해도 피부가 조금이라도 하얗게 되지도 않았는데, 수술을 제외한다면 내 눈이 더 커지거나, 코가 더 후덕해지지는 변화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가치관이나 내가 조정 가능한 자원의 배분에서는 조화를 추구하고, 균형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 난 조화로운 삶이 무엇인지와, 추구하고자 하는 미래의 꿈에는 어떤 것들이 섞여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를 더욱 많이 생각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조화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무조건 답은 아니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투입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가지에 집중하는, 달리 말하면 치우쳐진 삶의 필요성도 이야기 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선택과 집중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